[W.STORY] 게임을 통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23-06-12



메타버스 플랫폼이 여러 분야에 다양한 플랫폼으로 적용되게 되었다. 특히 과거 2D 게임의 향수를 불러오는 게더타운은 그 유행의 중심이 되었다. 문제는 메타버스 플랫폼의 이용 연령에 대한 이야기였다. 메타버스는 크게 맵 매이킹과 게스트로 접속의 역할이 나뉘었고 그거에 따른 연령 제한이 간과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게더타운의 경우 게스트 접속 또한 디지털 안전 등의 문제로 18세 미만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추후 학생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우리나라 바람의 O라의 소스를 차용한 ZEP의 경우도 만 14세 이하는 게스트로 접속을 할 수 없다. 게임으로 분류되는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는 만 12세 이상이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연령제한에 맞춰서 메타버스는 다양한 정책이나 업데이트하였다. ZEP의 경우 학교에서 웨일 스페이스를 부여해서 학생이 부여받은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ZEP edu로 접속 나이 제한이 풀린다. 마인크래프트 역시 에듀케이션 버전을 출시해 모든 연령이 사용 가능하도록 하였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게임의 형태로 분류되면서 필자는 게임의 통제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게임 통제나 규제는 그 과정과 의미도 있지만 논란의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단순히 부모가 자녀의 게임을 통제하거나 연령층이 높은 세대가 더욱 낮은 세대의 게임 문화를 비판하는 것을 벗어나서 게임은 통제되어야 하는지 통제가 되는지의 고민이 드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를 이야기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해외의 정책과 국내 게임 통제나 규제가 해외와 충돌이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전 글에도 말했지만, 뉴O데스크의 역사적인(?) 실험인 ‘게임중독자들의 폭력성 실험’을 위해 PC방 전원을 내리고 이를 그대로 보도한 사건(이게 불과 10여 년 전, PC 온라인 게임이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시기였다.)만 보아도 게임은 왜 항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난 돌처럼 이야기될까?

 

(출처 pexel)


게임 규제의 과정과 의미


필자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1990년이 지나면서 PC와 인터넷이 보급되었다. 중학교 때 우리의 이순신 장군님이 메O패스를 외치던 광고와 함께 전화선 대신 초고속 무제한 인터넷이 들어왔다. (부모님 몰래 전화선으로 게임하다가 걸려서 전화선 대신 나의 다리가 회초리로 부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깐 것은 나의 인터넷 강의가 이유였지만... 인터넷 강의 접속 시간과 게임 접속 시간은 비할 바가 못되었다.) 온 동네에 PC방이 보급되고 집 뿐만 아니라 놀이 문화가 컴퓨터로 넘어오는 시기였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는 것이다. 모두 게임을 비판하였고, 회사는 게임으로 돈을 벌기 위해 엄청난 비즈니스 모델들을 넣기 시작했다. 게임은 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고, 게임사는 게임 접근은 쉽게, 또 강해지기 위해서는 과금을 해야하는 형태로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가 커지면서 게임 과몰입 문제는 가정이나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공론화되었다. 게임 과몰입의 공론화로 게임업체들은 하루 접속을 통제하는 ‘피로도 시스템’, 과몰입 해소를 위해 자체 기금 조성 등을 했지만, 부모 입장에서 과몰입이나 통제의 한 이유인 과금 요소 등은 진흥과 규제의 균형 선에서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리고는 2011년 국가가 개입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갔다.


 (출처 pexel)


통제는 그러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기사도 나와 있지만 게임 통제에서 주요 문제점은 많이 나온다. 게임에 관한 법안들이 애매모호하고 게임에 대한 이해가 낮은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규제라는 것은 게임에서 문제 되는 요소를 해결하고 게임의 건전성을 살려야 하는데 대부분은 게임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들이 많다. 또한 게임 과몰입이나 통제하지 못함의 기준은 너무 모호하고 그 기준이 편파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도한 규제들은 도리어 세대간의 갈등을 만들고 게임 산업이 게임 말고 다른 문화로 연결되는 현재 사회에서 게임 산업의 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제 2012년 게임 건전 이용 제도 측정문항을 보면 해당 내용은 게임성을 철저히 무시한 배점인 경우가 많았다.(심지어 원안은 이보다 더 심했다는 카더라가...). 이에 게임 제작자들은 이를 풍자하려고 이 문항에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게임이 1등을 하는 ‘건전 게임 만들기 게임잼’을 개최하였다. 우리 모두 예상한 대로 게임성이 철저히 빠지고 가치가 없는 게임이 만들어졌다. 게임이 게임성이라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출처 pexel)

 

통제는 그러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마O크래프트 미성년자 이용 불가 사태’라는 사건으로 게임 통제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2011년부터 시행한 셧다운제로 12세 이용가 게임인 마O크래프트를 미성년자가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 문제가 된 강제적 셧다운제는 2022년에 폐지되고 선택적 셧다운제만 남아있게 되었다. 실제 코로나 19 상황으로 샌드박스 네트워크의 도티와 많은 마O크래프트 유저들과 협업으로 어린이날 시념 마인크래프트 청와대 월드 맵을 누구에게나 배포한 일이 있어서 더욱 화두는 되었다. 사실 필자도 리O지라는 게임을 즐기다가 나이 제한이 올라가면서 당시 아끼던 계정을(물론 리O지는 마O크래프트와 다르게 나이 제한의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래도 잘 즐기던 학생 유저인 필자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사용 못 하게 된 기억이 있다.


게임의 호불호나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게임은 생활의 일부 혹은 문화 중 하나라는 사실은 어떤 사람들 어떤 연령들도 동감할 것이다. 앞글의 게임 과몰입에 관한 생각처럼 게임의 통제는 그 목표가 뚜렷하고 게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게임 제어 능력을 기르고 게임에 대한 충분한 이해로 일상생활과 게임을 함께 영위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필요하다. 게임을 하는 것을 통제해서 게임을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만드는 것은 통제가 아니고 탄압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 아닌 사람 모두 게임에 대해 이해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게임 통제와 예방의 큰 뿌리가 돼야 할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박지웅 / 교사


학창 시절엔 나름 학교에서 유명했던 게임 폐인이었고, 지금도 아이들과 게임 이야기를 하면 즐겁고 학부모에게 올바른 게임 문화를 이야기하려는 교사다. 나이가 들면서 ‘학창 시절 날 새면서 어떻게 게임을 했을까’란 해답 없는 질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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