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TORY] 민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 - 게임잡학사전

2022-03-14



전쟁은 게임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다.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 고난 끝에 찾아오는 승리의 희열 등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전쟁보다 적절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 꾸준히 개발되어 왔으나, 대부분의 전쟁 게임에서는 군인이 주인공의 역할을 맡아왔다. 공포에 떨며 도망치는 민간인보다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군인의 삶이 훨씬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1비트 스튜디오(11bit Studio)는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을 통해 주변부에 머물던 전시 민간인을 무대의 중앙으로 끌어올렸다.

  

게임의 목적은 내전이 진행 중인 포고렌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종전일이 다가올 때까지 민간인으로 구성된 그룹을 생존시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식량, 무기, 의약품, 기호품 등 많은 물자가 필요하다. 주인공들은 꽤 괜찮은 아지트에서 생존을 시작하지만, 아지트에 있는 물건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이나 약탈을 해야 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게이머는 양심과 생존 사이에서 계속 딜레마에 빠진다. 먹을 것을 가져가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노부부의 식량을 약탈할 것인가? 아픈 엄마에게 약을 나눠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들을 모른척할 것인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게이머는 양심의 가책을 대가로 물자를 확보하거나, 양심을 지킨 대가로 생존의 위협을 감내해야 한다.

 

눈 딱 감고 언제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쉽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게임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약탈이나 살인 같은 비윤리적 행위들은 주인공을 죄책감과 우울증에 빠트리고, 이는 배고픔이나 질병처럼 생존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주인공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다고 마냥 착하게 살 수도 없는 것이, 약탈과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물자 부족으로 불과 며칠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최후의 생존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씁쓸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 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게임에서는 전쟁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며,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 민간인들이 지옥에 빠진다는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영웅과 승리, 애국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전쟁의 참혹함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군인의 눈으로 바라보던 전쟁을 민간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우리는 전쟁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게임의 제목처럼 민간인도 생존을 위한 ‘자신만의 전쟁’을 수행한다는 사실 말이다. 국가 간 긴장관계가 고조될 때마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게임이다.







이병찬 변호사 /


실력은 엉망이지만 오랫동안 게임을 사랑해 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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