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TORY] 게임으로 본 사회심리학 - 게임에서 왜 도발을 할까?

2023-05-08


 

게임의 재미는 이기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런 재미는 게임의 재미를 설명하는데 반에도 못미친다. 심리학의 원리에 의하면 잃을 것이 있을 때 즐거움은 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게임을 할 때 그냥 하는 것보다 내기를 하면 더 재미있는 원리다. 이기면 2000원을 얻고, 지면 한 푼도 못 받는 게임과 이기든 지든 1000원을 얻을 수 있는 게임 중 어떤 게임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할까? 두 게임 모두 기대치는 1000원으로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게임이 뒤의 게임보다 월등하게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머릿 속의 계산기가 전자의 게임에서 이기면 2000원인데, 후자는 1000원이라 1000원 더 이득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크다. 전자의 게임은 이기면 2000원 이득이고, 지면 그 2000원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따고 잃는 것까지 같이 고려하면 4000천원이 걸린 게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지면 돈도 잃지만 상대방에게 자존심까지 잃는다. 이건 정말 돈으로도 계산이 안되는 절대적인 피해다. 절대 집중이 요구되는 한판 대결이 시작된다. 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한 ‘게임 밖 게임’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과제에 대한 집중은 몰입(flow)이라는 개념으로 연구되었다. 칙센미하이의 몰입은 흔히 과제의 난이도와 기술의 함수로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처음 스키를 타는 초급자는 쉬운 코스가 재미있다. 그러나 기술이 좀 늘어 중급이 되었을 때는 초급코스는 너무 시시하고, 상급코스는 아직 불안하기 때문에 중급코스에 스키를 즐길 때 가장 재미있어 진다. 마지막으로 상급자가 되면 상급 코스 이외에 코스는 지루하기만 하다는 것이 몰입이론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상급자는 상급자 코스에서만 스키를 탈까? 그건 아니라는 것은 스키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상급자들도 초급이나 중급에서도 스키를 탈 때가 있다. 이때는 자신의 기술과 어울리는 코스의 난이도가 아닌 그 코스에 있는 사람들이 핵심 타겟이된다. ‘너희들 나처럼 잘 타는 사람 봤어?’하며 뽐내기 딱 좋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재미는 상급자 코스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경험이기에 초급, 중급코스에 상급자들이 드물지 않게 출몰하는 이유다.



게임에 대한 재미를 몰입이론에 적용해서 게이머와 게임난이도로 설명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아주 초보적인 설명이다. ‘실력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해서 스키를 즐기세요’와 같은 말이다. 초심자들은 가르쳐주는대로 하기도 벅차기에 이것저것 신경 쓸 틈이 없다. 그것들만 숙달하는데도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익숙해지면 이제 자신의 실력에 맞는 슬로프는 점점 시시해진다. 자기보다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력을 뽐내고 싶다. 그러려면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자칫 실수를 할지도 모르는 고난이도 기술 말이다. 만약 성공하면 주변의 놀라움과 찬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겠지만, 실수를 하면 창피함을 모면하기 힘들다. 딱 내기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게임 속에서 왜 도발을 하는 상황은 내기의 상황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반대로 도발을 하는 사람을 이기면 평범한 경쟁자를 이기는 것보다 몇 배의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기에 그 도전을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 드디어 내기 판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게임이 시작되면 처음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된다. 마치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가족의 운명까지 걸린 중요한 일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바로 몰입에 돌입하게 된다.



실제로 몰입이 가장 쉽게 일어나는 환경은 게임이나 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아니다. 몰입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며, 가장 필요한 기술이기도하다.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은 자기를 전력으로 쫓아오는 사자를 따돌리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지금 사자에게서 벗어나는 것 말고 다른 행동이나 생각이 들어올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몰입연구를 보면 의외로 자신의 업무에서 몰입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간이 촉박한데 일을 다 마치지 못하면 자기 지위가 위태로운 경우 자연스럽게 초집중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손에 다른 사람의 목숨이 달린 외과수술의 경우도 몰입을 경험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외과의사들은 언제 응급환자가 발생할지, 그리고 갑자기 밤을 새우는 수술이 필요할지 모르는 긴장 상황이지만 그 과정에서 몰입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명예로운 결과로 이어지기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로 암벽등반과 같은 익스트림스포츠도 몰입상황에 쉽게 빠져드는 취미다. 암벽등반을 잘하려면 정상을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바로 다음에 잡을 바위와 디딤발 위치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만 실패해도 바로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진다. 물론 안전장비가 있지만 그걸 믿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예 암벽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게임 밖에서 몰입을 경험하지 못하는 지루한 상황이거나, 몰입의 결과가 별로 좋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으로 말이다. 두 가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게임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게임 속 외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전형적으로 해당하는 이들이 바로 청소년들이다. 사실 요즘 직장인들도 청소년들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주어진 선택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는 더욱 더 드물다. 그래서 게임 속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늘어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들이 게임 속에서 충분한 경험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 이럴 때 도발의 욕구가 강해지는 것은 또 다른 본능이라고 할 것이다. 마치 죽음의 본능과도 같다고 할까.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게임 속에서 도발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적절하게 도발을 하는 기술도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기술 중 하나이기에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게임 속에서 과도한 도발을 신고하도록 하는 것은 도발러들을 더 신나게 해줄 뿐이다. 오히려 부적절한 도발러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참된 교육을 해주는 ‘고인물 순찰대’같은 것을 만드는 편이 더 효과적이리라. 마치 스키장에서 난폭 질주를 하는 이들을 제압하는 고수 안전요원처럼 말이다.

 

[변사톡] 게임하다 '이말' 한마디면 성범죄 전과 1

출처 : 변사톡


삶은 실전이라고들 한다. 게임 속도 삶의 일부라고 한다면 게임 통해서 배우는 것들 역시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도발을 배우는 것과 같은 배움이 일어나기에 게임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임 속에서 게임만 배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장주 소장 /


평범한 사람들이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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