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게임(personal games)이라는 장르 (1)

2020-10-05


게임의 역사가 시작된 약 70년의 기간 동안 게임이 다뤄온 주제는 전투, 전쟁, 건설, 전략, 판타지같이 투쟁적이고 거대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주제들은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을 만족시키기에 상당히 적합하다. 게임 내부에서 이러한 주제들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행동과 상호작용을 구현한 방식을 개발자들은 ‘게임 메커닉’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게임 메커닉은 대체적으로 무언가를 건설하고, 생산하고, 성장하여 이를 바탕으로 전투를 치르거나 다른 대상을 정복하는 것을 가장 중점적으로 구현해 왔던 것이다. 이런 방식은 플레이어를 건설과 성장의 궤도 속으로 진입시켜 지속적으로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데에 적당한 방식이었다. 수치화되어 나타나는 매번의 성취감과 명확하게 제시되는 목표는 복잡하게 구조화된 일상보다 매우 명쾌하게 해야 할 일을 지정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게임의 소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건설과 성장, 전투, 전략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어떤 개발자들은 ‘어떻게 하면 게임이 현실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하면서 시리어스 게임이나 소셜 임팩트 게임 같은 새로운 장르들을 만들어냈다. 시리어스 게임이 현실적인 효용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소셜 임팩트 게임은 현실 사회의 문제를 소재로 삼아 이러한 해결을 게임 내에서 구현하여 플레이어의 인식 전환을 이끌어내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바탕으로 게임은 예전보다 더 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게임도 예술이다”라는 명제가 게임업계에서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게임의 예술성 연구 과제가 발주되기도 했고, 국회에서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자는 문예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었다.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고자 하는 복잡한 정의를 여기에서 이야기하기보다, 게임이 우리의 인생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태도를 한 번 돌이켜보는 것이 더 이야기가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지 못한가?” 혹은 “게임이 애써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을 떠올려보면 게임은 온갖 문제들을 다 다루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을 통해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동안 게임이 현실이나 판타지 속의 갈등을 매개로 삼아 플레이어 자신의 문제에는 천착할 수 없도록 했다고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남자 친구와 가졌던 데이트 상황을 게임적으로 재치있게 풀어낸 <우리는 5월에 만났지(We Met in May)>


그러던 중 필자는 작년 GDC(Game Developer Conference)에서 흥미로운 발표를 하나 듣게 되었다. “게임이라는 개인적 체험(Personal Experience as Games)”이란 제목의 발표는 개발자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소재로 하여 제작된 게임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거식증에 걸릴 정도로 다이어트를 했던 체험을 게임으로 만든 제니 자오 시아(Jenny Jiao Hsia)의 <컨슘 미(Consume Me)>라는 게임, 2017년 GDC의 스타로 부각했던 여성개발자 니나 프리먼(Nina Freeman)이 자신의 남자 친구와 가졌던 데이트 상황을 게임적으로 재치 있게 풀어낸 <우리는 5월에 만났지(We Met in May)>, 게임 사운드 디자이너 프리실라 스노우(Priscilla Snow)가 자신의 수면 마비 경험을 독특한 사운드 디자인으로 풀어낸 <충격의 경감(The Relief of Impact)> 등 흥미로운 게임의 발표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당시 발표를 했던 5명 중 4명은 공교롭게도 여성 개발자들이었다. 여성들은 현실 속에서 빚어지는 여러 충격이나 정신적인 아픔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삶의 조건들이 자신에게 큰 장애로 다가오게 될 때 이러한 요소들을 과감하게 게임적인 소재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 여학생이 강박적으로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상황을 매우 코믹하게 잘 풀어낸 <컨슘 미>


그중 제니와는 발표 후에 잠깐이나마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녀의 게임을 작년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 초청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막 대학(NYU)을 졸업한 작고 발랄한 20대 여성이었고, 그 작은 체구 안에 숨겨져 있는 상처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실제 플레이해 본 <컨슘 미>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 여학생이 강박적으로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상황을 매우 코믹하게 잘 풀어내었다. 게임 내의 이 어린 여학생은 플레이어의 명령만 따르게 되어 있지만, 미니 게임에서 완벽을 추구하지 못하면 자주 자신의 욕망이 폭발하여 폭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잘 컨트롤해서 특정 수준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 과정이 지난하고 괴로워서 자주 포기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특히 캐릭터의 팔이 마치 문어처럼 여기저기로 뻗어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골라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주 실수를 유발하게 만드는 미니 게임은 여성들의 다이어트 강박을 경쾌하게 풍자한 부분이다.


욕망을 잘 컨트롤해서 특정 수준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


이러한 형태의 게임들은 한국에 소개할 때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한데, 과연 그게 돈이 될까요?”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의 천박함이나 근시안적인 태도는 잠시 접어두고 이렇게 반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게임 메커닉이 게임을 표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수단임은 많은 개발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게임들은 얼마나 다양하게 이런 메커닉의 표현법을 키워나가고 있을까? 성공한 게임의 메커닉을 그래픽만 바꾸어 비슷하게 내면서 안 그래도 작은 시장 내에서 아귀다툼하듯 플레이어의 주머니만 노리는 게임을 풀빵처럼 찍어내는 것을 우리는 “K-게임”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계속하고 있지 않았던가.


‘개인적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장르는 그간 게임에 익숙하지 않거나, 혹은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을 그들의 약점과 상처를 보듬는 방식으로 게임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게임 메커닉의 다양성과 풍부함은 게임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밑거름이다.



이정엽 교수 /


이정엽은 게임디자이너 겸 게임학자로 현재 순천향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 시리아 난민의 삶을 다룬 <21 데이즈> 외 다양한 인디 게임을 디자인해왔다. 인디 게임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해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을 조직하고 심사위원장을 역임. 저서로 『인디 게임』,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