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 - 게임으로 본 사회심리학 (4)

2020-10-16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단맛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본능입니다. 본능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 대신 그 본능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 기능을 하는지를 이해하면 그 본능의 작용을 조금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흔히 게임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보상이 게임에 빠지게 만드는 특별한 요인이라고들 설명해왔습니다. 그런데 영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면 보상보다 더 근원적인 요인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우선 생후 4개월밖에 안된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살펴보시지요.


The Art of Choosing / 쉬나 아이엔가(2010) 저


연구자들은 이제 막 목과 머리를 가눌 수 있을 정도가 되는 아기 손에 줄을 묶고 아기가 줄을 당길 때마다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익숙할 때까지 두었다가 연결된 줄을 끊고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자기가 움직여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나오는 소리를 듣고 아기들은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기들이 줄을 당겨 들을 수 있는 분량과 똑같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실험이 밝힌 중요한 사실은 아기들이 그냥 음악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기들은 그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힘, 즉 통제력이 진짜로 원하던 것입니다.


통제력은 사람뿐 아니라 생물들이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가능한 큰 통제력을 얻고자 동기화가 됩니다. 대결에서 경쟁자를 이기는 것은 경쟁자들은 자신의 통제력 아래에 두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됩니다. 흔히 실력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을 심리학적으로 보면 통제력이 얼마나 강한가 여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기면 기쁘고, 지면 화가 나는 것은 본능적 반응이며, 통제력이 점점 커진다는 의미는 삶이 번영한다는 뜻과 직결되기에 만족스럽게 됩니다.


통제력의 강력한 상징


그런데 통제력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8살짜리가 5살짜리에게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10살 형에게는 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의 통제력이 얼마큼 되는지 늘 시험하고 싶어 합니다. 형제간에 싸움이 나는 이유는 동생이 형에게 반항하는 방식으로 통제력을 발휘하려고 할 때 일어납니다. 반대로 어디서 통제력을 잃고 오면 괜히 더 어린 동생을 괴롭히거나 동생이 없을 경우 강아지나 심지어 장난감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그만큼 통제력은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없이 말입니다.


어려운 상대를 이겼다는 것은 통제력이 상승한다는 의미이고, 쉬운 상대를 이기는 것은 통제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쉬운 게임은 재미가 없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쉬운 것을 수백 번 해도 통제력이 늘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습니다. 게임은 하면 할수록 강력한 몬스터나 상대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통제력이 강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이들 말로 바꾸자면 자꾸 재미있어지는 게임을 하는 것이고요. 어른의 말로 바꾸자면 어려운 것을 하려고 애쓰는 일, 즉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게임의 속성이 됩니다.


시행착오 끝에 통제력이 강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어떤 부모도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물며 게임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제공 해주려고 하십니다. 그렇게 절약한 시간과 에너지로 아이들이 부모님이 원하는 공부가 되었든, 운동이나 피아노가 되었든 그런 활동에 전념 하기를 바라십니다. “엄마가 필요한 것 다 해줄 테니 너는 공부만 하면 된다” 이런 상황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통제력이 발휘되는 만족스러운 상황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통제력을 기르고,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는 그런 불안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게 다 있는데 뭐가 불만인가 싶지만, 그 필요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 통제력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 대신 통제력을 잃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대표적인 사례로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한 보호를 받습니다. 또한 먹이 걱정 없이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의 식사를 제공받습니다. 야생의 동물들과 비교하면 최고급 호텔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다분히 인간의 시각에서 본 입장입니다. 동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통제력을 포기하고 안락함을 얻는 대신 우울증을 겪습니다. 먹이를 구하거나 혹시 모를 천적이 나타났을 때 사람을 의지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동물들은 정형행동(stereotyped behaviour)이 나타납니다.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거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움직이거나 자신의 배설물을 먹는 행동이 대표적입니다. 자칫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시행착오와 반복연습이 필요합니다. 통제력이 부족한 청소년 시기에 게임에 몰두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당당한 주인으로서 연습 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냉정한 감독이 아니라 따뜻한 응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장주 소장 /

평범한 사람들이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 : 청소년에게 게임을 허하라(공저), 사회심리학(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