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본다는 것

2021-05-24


게임 하기와 보기


게임을 하는 행위는 언제나 보는 행위를 동반한다. 여기서 게임을 ‘본다’는 말은 자신이 하는 게임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스포츠 경기 또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관람/시청하는 행위를 뜻한다.


전자오락실, PC방, 플스방(플레이스테이션방)과 같은 장소에서 게임 보기는 하기의 중간중간에 반복적으로 이뤄진다. 게임 보기를 독립된 하나의 경험으로 부각시킨 것은 e스포츠(e-Sports)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PC방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대회에서 시작해, 게임전문 방송채널의 등장과 함께 전문화·체계화된 e스포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적인 ‘보는 게임’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게임을 소재로 한 인터넷 방송도 인기다. 게임 BJ/크리에이터/스트리머의 인기는 연예인의 그것 못지않다. 트위치(Twitch)나 유튜브 게이밍(YouTube Gaming) 등 게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용자 또한 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 이후 그 증가세가 더욱 두드러짐은 말할 것도 없다.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나 즐거운 경험이라 하더라도, 남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충분히 흥미롭고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일이다.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글타래의 목적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첫 글에서는 기존 미디어와 스포츠 분야에서 ‘보기’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알아보고, 게임 보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단초를 찾는다. 중계, 관람/시청과 같은 요소를 빗대 봤을 때 오늘날의 게임 보기를 기존 미디어 및 스포츠와 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존 미디어에서의 ‘보기’


기존 관련논의들은 대체로 미디어를 보는 행위가 단순히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영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 미디어 보기는 미디어가 재현하는 세계를 관찰하고 인식하는 일로, 우연성을 갖는 행위라기보다는 목적성과 방향성이 함축된 행위다. 이에 많은 논의들이 미디어 텍스트의 의미가 어떻게 생산되고 해독되는지에 관심을 가져왔다(Fiske, 2010/2017; Mirzoeff, 1999/2009; Sturken & Cartwright, 2001/2006).


영상 미디어의 보기 경험에 대해서는 특히 영화와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 온 감이 있다. 초기 영상 미디어 분야 논의를 형성했던 영화 연구는 영상이나 이야기가 어떻게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에 기댔다. 이들은 텍스트를 이데올로기적 존재로 간주하고, 영화의 스펙터클이 어떻게 관객을 만들어내는지 논의했다. 텍스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이나 (내러티브를 통해 설정된) 사회적 역할에 대해 동일시, 공감과 같은 인지적 감정활동을 느끼게 한다(Grodal, 1997; Mikos, 2001, 2008/2015; Tan, 1996). 그것은 관객이 극장 안에서 카메라의 시선과 자신의 시선을 일치시킴으로써 비롯된다(Metz, 1977/2009). 이러한 논의들은 이후 텔레비전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텔레비전 연구는 기존 영상 미디어 연구에서 비롯된 비판적 관심사들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했다. 기호학적 접근을 텔레비전에 적용해 세련화한 접근(Fiske & Hartley, 1978/1994 등)은 물론이고,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천착하는 것에서 나아가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이야기와 스토리텔링 전략이 인종 차별주의 등과 같은 당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관련됨을 밝히는 시도들(Newcomb, 1974 등)도 등장했다. 현대 사회에서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대중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주목한 논의들(Schwartz, 1997/2006 등)도 있다. 그에 따르면 보는 주체로서의 미디어 수용자는 자연이 아니라 인위적인 도시, 즉 스펙터클 사회로서 근대사회의 원인이자 결과물이다(임종수, 2010).


하지만 무엇보다도 텔레비전 연구에서의 괄목할 성과는 텍스트에서 수용자로의 대상 전환이다. 텔레비전 이용에서 발견되는 해석 공동체(Radway, 1987; Lindolf, 1988 등), 텔레비전 이용에서의 문화적 즐거움(Fiske, 2010/2017; Ang, 1982/2018 등), 특정 장르에 대한 이해방식(Liebes & Katz, 1986), 가족여가로서 텔레비전 이용(Morley, 1986) 등 다양한 층위의 수용자 연구가 이뤄지면서 수용자가 생산자에 의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존재임을 밝혔다.


이러한 논의들은 텍스트와 관객/시청자들의 관계에 기반해, 텍스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객/시청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며, 그 과정에서 인지적 감정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등을 설명해준다. 이는 게임 보기 논의에도 적용 가능한 지점들이 많다. 게임 또한 영상 미디어이며, 텍스트와 플레이어 간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플레이어들이 텍스트에 대한 인지적 감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Friedman, 1993)이다.


하지만 다음 이유로 기존 미디어 논의는 게임 논의에 적용하는 데 있어 제한적이다.


첫째, 아무리 미디어를 보는 행위가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이라 해도, 게임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둘째,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등 기존의 미디어 텍스트에서는 생산과 수용 시·공간이 분리된다. 창작자에 의해 텍스트가 먼저 완성된 후 수용자에게 제공된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도 개발자(사)에 의해 제작된 후 플레이어에 의해 소비된다. 하지만 게임의 이야기가 다른 미디어 텍스트에서처럼 완결된 채로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게임은 플레이의 참여를 통해서만 하나의 완전한 텍스트가 되며, 따라서 게임의 이야기가 생산되는 시·공간과 소비되는 시·공간은 일치한다(강신규, 2016. 11, 2018).


셋째, 특히 e스포츠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게임 경기를 보는 경험을 동반하지만, 물리적으로 현장에 있지 않아도 미디어를 통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기존 영상 미디어 수용에 대한 논의로는 게임 보기 경험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스포츠에서의 ‘보기’


대부분의 스포츠는 경기를 하는 사람(경쟁자)과 경기를 보는 사람(구경꾼, 관중, 시청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게임(특히 e스포츠와 인터넷 게임방송)과 유사점을 지닌다. 직접 경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경기에 참여한다는 점, 경기의 과정과 결과가 미리 공개되지 않고 보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점, 현장에서 직접 볼 수도 있지만 미디어 기기를 통해 볼 수도 있다는 점 등에 있어 스포츠와 게임은 유사하다.


그러므로 스포츠 보기 논의는 기존 영상 미디어 논의에서 설명해주지 못하는 게임 보기의 특정 측면을 어느 정도 채워줄 가능성을 갖는다. 그동안 스포츠 보기 연구들은 관중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관람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포츠 중계가 관람하는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논의해왔다.


먼저, 관중은 일상적으로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부터 적극적으로 리그전이나 토너먼트를 챙겨보는 팬들까지를 포함(Cheung & Huang, 2011. 5)하며, 경기 보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경기를 놀이의 범주에 넣는 하위징아(Huizinga, 1955/1981)는 경기의 결과가 참가자 혹은 구경꾼으로서(현장에서 직접 보는 관중이건, 미디어를 매개한 시청자이건) 그 과정에 참가한 사람에게만, 그리고 경기의 규칙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만 흥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관중은 경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기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기에, 모든 경기가 관중을 요구로 하는 것이 아님에도 관중이 모여 공유된 규칙으로 즐기기에 즐거움이 더 고조될 수 있다.


스포츠 보기의 동기에 관한 연구들은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트레일, 핑크 & 앤더슨(Trail, Fink & Anderson, 2003)에 따르면 사람들은 성취, (각본 없는) 드라마,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경기를 통해 배우는 지식과 정보, 신체적 차원의 테크닉, 가족과의 여가 등을 위해 스포츠를 즐긴다. 멜닉(Melnick, 1993)은 스포츠 관람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동기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스포츠를 본다는 것은 현대 도시 생활에서 몇 되지 않는 사회적 발산 수단의 일종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같은 경기를 즐김으로써 관중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현장에서 경기를 즐기는 것의 제한점에 대한 논의도 있다. 에스비요른손 등(Esbjörnsson et al., 2006)은 현장에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생동감 있는 경험을 할 수는 있지만, 경기를 조망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관중의 모순’에 빠져 경기 흐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중계는 생산주체(선수, 팀, 프로모터, 협회 등), 소비주체(관중/시청자, 팬 등), 인프라(전용 경기장, 법·제도·규칙 등), 그리고 유통주체인 미디어가 연결된 결과이다. 미디어를 통해 스포츠는 산업화되고, 역으로 미디어는 스포츠를 주된 콘텐츠 원 중 하나로 삼는다. 미디어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현장에 있지 않은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해설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설자는 말 그대로 중계방송 해설자와 플레이를 분석하는 분석가의 두 유형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선수나 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벼운 농담 등으로 중계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끈다면, 후자는 경기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설명한다. 두 유형의 해설자들은 경기 중계 전반을 이끌면서, 현장에서 (선수들의) 행동이 발생하지 않는 시간도 메운다(Cominsky, Bryant & Zillmann, 1977). 또, 경기의 긴장감이나 선수들 사이의 경쟁관계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선수들 사이를 가깝거나 중립적인 관계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적대관계로 묘사하는 것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경기에 대해 더 흥미를 느끼고 관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해설자들은 궁극적으로 경기 보는 것을 더 즐거운 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Bryant et al., 1982).


이러한 스포츠 보기 논의는 게임 보기, 특히 그 중에서도 e스포츠의 많은 부분(관람, 관중, 중계)과 인터넷 게임방송의 일부(관람, 중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게임 보기가 스포츠와 유사한 점이 있긴 하지만 게임 보기는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띤다. 사용된 플랫폼, 게임이 벌어지는 장소, 플레이어와 관람자와의 관계 등에 따라 보기 경험은 달라진다. 플랫폼은 게임이 구동되는 하드웨어의 형태를 지칭하며, 아케이드, 비디오 콘솔(고정형/이동형), PC 패키지/온라인, 모바일(태블릿PC, 스마트폰 등)을 포함한다(한국콘텐츠진흥원, 2011).


플랫폼은 게임이 플레이되는 장소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아케이드게임의 경우 전자오락실, 고정형 비디오게임의 경우 가정이나 플스방, PC 패키지/온라인게임의 경우 가정이나 PC방이 주된 플레이 장소가 된다. 이동형 비디오게임과 모바일게임은 그 특성상 어디서든 플레이가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포츠 보기 논의가 게임 논의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기존 영상 미디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게임은 (스포츠와 다르게)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하는’ 행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본다는 것은?


결국 미디어 논의와 스포츠 논의로부터 일정 도움을 받긴 하였지만, 게임 보기 경험이 갖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닌 고유의 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게임 보기는 기존 미디어나 스포츠와 달리(혹은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속성을 가질까. 다음 글에서는 게임 보기가 갖는 고유의 속성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강신규 연구위원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방송, 게임,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겸임교수, 문화체육관광부 게임문화포럼 위원,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 게임광고자율규제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 게임까지>(공저, 2019),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포비아>(공저, 2013), 논문으로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메타/게임으로서의 ’게임보기’: 전자오락 구경부터 인터넷 게임방송 시청까지’(공저,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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