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와 혁명의 아름다운 콜라보 <디스코 엘리시움>

2021-06-29



게임이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반드시 시간순의 스토리텔링에만 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게임들은 메인 스토리 이상으로 설정된 세계관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다크 소울>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여러 아이템들에 흩어진 이야기들을 통해 이 세계의 구조와 배경을 풀어내고, <키메라 스쿼드>는 메인 스토리로 폭탄 테러의 수사를 다루지만 정작 게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인간과 외계인이 얽혀 살게 된 전쟁 이후의 세계라는 배경을 통해 다뤄지는 다인종 사회에 대한 우화였다.


2019년 출시된 롤플레잉 어드벤처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도 비슷한 방식을 따른다. 메인 스토리는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2인조의 추리물이지만 플레이하다 보면 이 게임의 주제는 살인사건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스토리보다는 이 세계의 설정과 배경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다가온다.


스팀펑크나 디젤펑크 같은 근현대에 가까운 스타일의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배경은 혁명과 그 이후의 사회상이다. 레바숄이라는 이 가상의 도시는 플레이 시점 기준으로 약 4-50년 전에 대규모 혁명이 일어났다 실패한 도시다. 공산주의 혁명을 선언하고 왕정을 무너뜨린 임시정부는 그러나 혁명에 성공하자마자 이를 두려워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연합군에 의해 처절하게 진압당했다. 수만 명이 학살당하고 도시는 사실상 폐허가 되었으며, 특히 게임의 주 무대가 되는 서부 빈민가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슬럼으로 남은 상태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주 배경인 혁명 이후의 폐허는 현실의 역사에 존재했던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정부였던 프랑스의 1871년 파리코뮌 사건에 대한 오마주다. 보-불 전쟁의 패배로 인해 왕정이 자연스럽게 무너진 프랑스 파리에서 봉기한 혁명군은 파리 코뮌을 선언하고 자치정부를 꾸렸지만, 파리를 포위하던 프로이센 군이 프랑스 정부군과 협력하며 코뮌을 공격하며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학살이 양측 모두에 의해 발생했고, 한동안 파리는 혁명 실패와 학살의 상처를 안은 채로 살아가는 도시가 되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레바숄은 실패한 혁명의 잔재인 파리코뮌의 뒷이야기를 다루는 배경이다.



실패한 혁명의 도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게임의 제목에도 들어가는 디스코라는 음악 장르와 엮인다. 게임의 주인공은 술과 약물에 찌든 부패한 중년의 형사인데, 그는 수시로 디스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낸다. 판타지 세계지만 이 세계에서 디스코는 현실의 그것과 같은 음악으로 여겨지며, 혁명 이후의 세계에서 한때 크게 유행했으나 이제는 한물 간 장르로 취급받는 모습을 보인다. 혁명이 실패한 세계라는 배경도, 살인사건 수사라는 플롯도 디스코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왜 게임의 제목에까지 들어갈 정도로 디스코가 강조되는 것일까?


현실세계에서 70-80년대를 풍미했던 디스코 음악은 동시대의 사회상과 엮이는 문화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띤다. 2차대전 이후 대호황을 맞은 서구 세계는 베이비붐과 경제성장을 타고 성장한 청년들로 하여금 구세계의 모순에 저항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이른바 68혁명으로 불리는 당시의 청년문화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동시대의 트렌드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저항을 노래하는 록과 영국 펑크가 큰 붐을 이루며 음악 장르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히피라는 이름으로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가 저항의 일환으로 나타났고, 이들은 음악적으로는 1969년 미국의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이라는 상징적 사건으로 엮이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혁명의 결과들은 실패에 가까운 초라함으로 귀결되었고, 영원할 것 같던 60년대의 호황은 1974년 오일쇼크를 시작으로 새로운 불황의 늪에 직면한다. 미국의 경우 디트로이트와 같은 대전 이후 미국 공업을 상징하던 도시가 몰락하면서 정규직 숙련공을 중심으로 한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며 파트타임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일자리로 대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저항과 연대를 외치던 히피들은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했고, 갑자기 넥타이를 매고 기업에 들어가면서 ‘여피’라는 이름으로 변신한다. 그 혁명의 다음 세대는 안정된 직장을 잡기 어려워지면서 혁명과 같은 사회적 개입 대신 자신의 삶 자체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한다. 불황과 개인으로의 침잠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디스코가 올라왔다.


비싼 돈을 주고 라이브 밴드를 고용할 수 없는 변두리 구석진 댄스홀에서 처음 디스코는 시작되었다. 레코드를 트는 것만으로 음악을 커버해야 했던 이 가난한 댄스홀의 주 고객들은 게이, 흑인 등 비주류였고, 춤추기 좋게 만들어진 대량생산된 음악들은 특유의 중독성을 만들어내며 서서히 인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1977년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디스코가 대중문화 전반으로 치고 올라오는 임계점이 되었는데, 이때 디스코는 춤추는 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밴드와 음악을 뒷전으로 돌리는 포스트모던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현실에서 디스코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 혁명의 시대 이후 개인으로의 침잠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세상의 중심에 개인인 나를 놓는 포스트모던의 흐름의 중심이라는 디스코의 입지는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혁명이 실패한 세계의 빈자리에 위치한 디스코는 주인공을 포함한 혁명 이후의 세대를 상징하며, 그들의 시대마저도 이제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디스코 엘리시움>은 전한다.


혁명과 디스코라는 보기 드문 조합은 스산해 보이는 도시 레바숄의 바닷내음과 함께 섞이며 독특한 감성을 게임에 부여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누구나 알게 모르게 혁명의 폐허가 남긴 잔해들을 맨발로 딛고 걸어가며 살아간다. 그 속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디스코의 강렬한 8비트는 단지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세계의 변혁을 주도했던 어떤 흐름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의미는 바로 그 지점, 혁명과 디스코를 이어나가는 어느 지점에 대한 오마주라는 차원에서 나타난다.



이경혁 평론가 /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과정. 디지털게임의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글 쓰고 말하고 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등의 저서,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등의 방송과 기고 등을 통해 게임과 세상이 관계 맺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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