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OM 25주년이 보여준 시대변화 <키메라 스쿼드> (1)

2020-09-09


외계인의 침공을 다룬 고전 명작, <XCOM>의 새로운 외전


SF의 단골 주제인 외계인의 지구 침공은 70년대 미-소 냉전기와 엮인다. 대규모 화력전이 아닌 전략무기와 첩보만이 오가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비밀과 음모로 점철되었고,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만드는 핵무기의 공포는 인류 절멸이라는 테마를 끄집어내며 국가의 패배가 아닌 지구 인류의 멸망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SF라는 장르를 통해 미지의 외계가 침략해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이야기는 데탕트 시대를 맞이하며 E.T같은 인류 친화적 외계인의 등장으로 변화했다.


1990년대 공전의 히트작으로 자리한 턴제 전술시뮬레이션 게임 <X-COM>은 외계인 침공이라는 주제를 다룬 게임 중에서 완성도를 따진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게임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인류에게 적대적이지만 그 의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음모적이며, 압도적으로 강한 기술력을 통해 인류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조지 오웰의 <우주전쟁>이래 변치 않는 외계인 침공 아포칼립스의 상황은 상당히 높은 난이도를 통해 게임 안에 구현된다.


턴 방식 전투이면서도 오히려 높은 긴장감을 자아내며 수작의 반열에 오른 <X-COM>은 이후 3편의 본편 시리즈를 내며 90년대 최고의 게임으로 자리잡는 데 그치지 않고, 2000년대 들어 다시금 리부트되었다. 2012년 파이락시스 게임즈에 의해 다시 탄생한 <XCOM: 알려지지 않은 적>은 발달한 컴퓨팅 기술에 힘입어 더 뛰어난 그래픽으로 외계인 침공에 의해 불타는 도시들을 그려냈고, 지나치게 손댈 구석이 많아 힘들었던 원작을 간소화시키면서도 시리즈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내며 호평받았다. 21세기 들어 시도된 많은 리부트작들이 저평가받던 상황 속에서 <XCOM>(원작 명칭에서 가운데 하이픈이 빠졌다)은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을 훌륭하게 해낸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XCOM> 리부트 1편의 성공은 추가 확장팩과 2편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2013년 1편의 확장팩인<XCOM: 우리안의 적>, 2016년 시리즈 2편인 <XCOM 2>가 충분한 흥행에 도달하면서 90년대 인기 시리즈는 2000년대에 다시금 장기 재흥행할 수 있는 근거를 갖추었다. 2020년 출시된 시리즈의 외전작인 <키메라 스쿼드>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키메라 스쿼드>는 <XCOM>시리즈 25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도 달고 있다. 작품의 변화가 가져온 의미를 생각해 보면, 25년이라는 세월의 의미 또한 적지 않다.


혼종성의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유있는 갈등과 해결을 다루다


<키메라 스쿼드>의 배경은 <XCOM>의 대전쟁이 끝난 이후의 세계다. 강력한 정신 세뇌로 여러외계종족들을 노예삼아 지구를 침략했던 이더리얼이 XCOM 사령관(플레이어)의 활약으로 패퇴했고, 한때 침략자였던 세뇌된 외계인들은 지구에 패잔병으로 남았다. 전쟁 이후의 지구는 더 이상 인류라는 단일 종족만의 행성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


플레이어가 <키메라 스쿼드>에서 맡는 역할은 치안 팀의 팀장이다. 전후의 도시는 여러 범죄조직들, 사이비 종교집단들, 현재의 체제를 부정하는 반정부세력들의 위협에 혼란스럽다. 외계인의 대침공만큼은 아니지만 평화로운 도시를 위협하는 새로운 내부의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다시금 분대를 조직해 나서게 된다.


게임의 제목에 들어가는 ‘키메라’라는 단어는 이 때 팀의 조합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를 상징한다. 과거 <XCOM>시절의 팀이 순수한 인간, 혹은 인간의 개량체로만 구성되었던 반면, <키메라 스쿼드>의 팀에는 전작에서 적으로만 등장했던 수많은 외계인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러 맹수들이 조합된 괴물로 등장했던 키메라라는 이름은 이 게임에서 서로 다른 여러 외계 종족들이 한 팀이 되어 치안 유지에 나서는 모습을 상징한다.


치안팀과 범죄집단의 전투가 일어나는 배경을 게임은 꽤나 두텁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강력한 체력을 자랑하는 외계인 뮤톤으로 이뤄진 집단은 외계인 차별이 대놓고 이뤄지는 지구를 떠나 자신들의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불법으로 우주선 재료를 수집하며 사건을 일으키고, 전작의 최종보스였던 이더리얼을 다시 지구에 강림시키기 위한 사이비 교단의 맹목적인 테러도 나타난다. 외계인 뿐 아니라 전쟁을 위해 개조된 인간인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세력들도 인간 중심의 도시에서 겪는 문제들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려 들며 플레이어와 맞선다.


이더리얼이라는 강력한 외계 세력 앞에 단일하게 보였던 지구와 인류는 전쟁 이후 나타난 새로운 변화로 인해 혼종성 가득한 세계로 변화했다. 변화한 세계에 도래한 뉴-노멀의 질서를 복원하는 주체는 심지어 인류가 아니라 그 혼종성 자체를 이름으로부터도 상징하는 ‘키메라 스쿼드’다. 인간 대 외계인이라는 단순했던 전투의 구도는 전술적 측면에서는 늘 적의 능력이기만 했던 외계인의 특수능력을 아군의 작전에 포함시키는 형태로, 세계관적 측면에서는 절멸 VS 방어라는 간단했던 갈등의 구도를 보다 다원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풀어내는 변화를 불러왔다.


<키메라 스쿼드>에서 상대하게 될 3대 범죄조직. 도시의 치안을 위협하는 타도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조직들이다.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은, 매체로서의 게임 사례


<키메라 스쿼드>가 보여주는 도시의 혼란 문제는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첫 번째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오늘날 대두되고 있는 소수자 문제와 차별 문제가 꽤나 무게있게 다뤄졌다는 점이다. 패잔병이 되어 지구에 남은 외계인 잔당들은 어쨌든 이제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구의 체제와 문화에 합류하거나 혹은 쏟아지는 차별대우를 피해 도주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키메라 스쿼드>가 다루는 대부분의 전투와 갈등은 이런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다.


이는 특히 전작들의 구도와 대비를 이루며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드러낸다. 외계인 대 인간이라는 단일한 구도의 갈등이 해소된 뒤 벌어지는 새로운 혼종성의 양상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갈등구도의 해결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동-서 대립이라는 거대했던 20세기의 대립이 21세기 이후 해소되며 일어나는 좀더 다양하고 복잡한 갈등의 양상으로 전환됨을 상징한다. 국제 정세에서의 변화가 냉전구도에서 다자간 구도로의 갈등 전환이라면, <키메라 스쿼드>는 민족주의라는 사회구성집단의 단일성을 중시하던 시대가 이제 다양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집단의 조화를 중시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음을 SF라는 장치를 통한 상상으로 그려낸다.


전투를 포함하는 디지털게임의 플레이는 갈등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주어진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극복하는 과정은 게임이 현실에 가까운 세계관에 얹어질수록 더 납득 가능한 갈등의 상황을 필요로 한다. <XCOM>시리즈가 훌륭한 난이도 구성으로 각광받은 것에는 강력한 외계인의 침공이라는 납득 가능한 상황 설정 또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 바 있었다.


<키메라 스쿼드>는 과거 냉전과 민족주의라는 단일했던 대립 가치가 오늘날의 다양성으로 전환되었을 때 어떻게 전투의 갈등 배경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을 통해 구성된 세계관에 전작의 완성도 높은 메카닉을 세워 내며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도, 사회성 측면에서도 모두 훌륭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키메라 스쿼드> 속에서 외계인의 참전을 통해 더욱 다양해진 전술 수행의 가능성 속을 헤매는 즐거움을 얻으며, 동시에 오늘날 더욱 다양해진 갈등이라는 현실을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되새겨보는 즐거움 또한 얻는다. 엔터테인먼트 도구이면서도 동시에 매체 역할로 기능하는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이 어떤 의미인지를 누군가 물을 때, 가장 쉽게 꺼내들 수 있는 훌륭한 사례로 <XCOM>시리즈의 외전작은 의미지어진다.



이경혁 평론가 /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과정. 디지털게임의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글쓰고 말하고 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등의 저서,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등의 방송과 기고 등을 통해 게임과 세상이 관계맺는 방식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