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TORY] 남 탓의 심리학 - 게임으로 본 사회심리학

2021-06-18

 

게임 속 세상은 현실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지면 누가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범인을 찾는 2차전이 벌어집니다. 대체로 나는 잘했는데 우리편 맴버 중 누군가 잘못하여 졌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동기가 발동합니다. 이겼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최고로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리모니를 합니다. 게임의 재미 중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적극적으로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라는 개념으로 다룹니다(Schlenker, 1980).

 

인상관리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이라고 슐렝커(Schlenker)는 정의합니다. 자칫 인상관리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확실하고 정확하게 다른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노력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합니다. 어떤 경우는 약점을 보이거나 자랑할만한 것들을 감추어 보여줄 때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어떤 게임을 즐기는가, 그리고 그 게임 속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또 아이템, 스킨을 장착할 것인가 등의 행위는 인상관리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때 제일 만족스러운가로 말입니다. 결국 게임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직업과 아이템, 스킨을 선택하고 전적을 관리하는 등 게임 속 거의 모든 과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이렇게 봐달라’라는 메시지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심리학에서 인상관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는 다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유능한 요리사가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책임감 있는 리더의 정체성을 보인 사람도 다른 맥락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 저돌적인 승부사일수 있고, 또 다른 맥락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따지는 전략가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쪼잔하게 그런 걸 뭘 따지냐 그냥 피지컬로 승부하면 되지’하는 자신만만한 돌격대장의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체성을 보유한다는 것은 인상관리는 맥락에 맞게 내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혹은 인상이 나빠지는 것을 가장 잘 방어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정체성을 고른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오랫동안 즐긴 유저들이 게임 속에서도 메인 캐릭터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부캐를 키우는 것도 이런 인상관리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상관리는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닌 협업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연극이 주인공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인상관리전략을 대인배 전략으로 했을 때, 상대방이 이에 응해준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인상관리 전략을 깐깐한 회계사로 바꿉니다. ‘보자보자했더나 안되겠군. 훔!!’ 이런 협업은 남들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와도 협업이 일어납니다. 즉 어떤 인상관리전략이 성공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만족감을 올려준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인상관리가 무의식적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똑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친구들과 어울려 플레이할 때와 게임 속에서 무작위로 팀을 지어 할 때 패턴이 다르게 나옵니다. 굳이 ‘이번 게임에서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내가 보이는지를 늘 염두해두고 살고 있습니다. ‘진정한 나’라는 역할도 어떻게 본다면 그 상황에서 적절하게 선택된 무의식적 인상관리 전략일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자신의 인상관리 전략을 실험하고 가다듬는 훈련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를 소개합니다. 네덜란드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팔켄브루흐와 페터(Valkenburg & Peter, 2008) 의 연구에 의하면,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본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보다 사회적 능력(Social Competence)이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외롭고 우울한 청소년들에게 이런 능력의 향상이 두드러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게임 속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해 보는 것은 자기 속에 숨겨져 있던 역량개발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LOL 챌린저 티어 엠블럼]


또 다른 연구(예를 들면, Toma & Hancock, 2013)에 의하면, 게임 속 잘 관리된 전적이나 업적이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됩니다. 높은 티어나 업적은 다른 사람에게 게이머의 긍정적인 인상을 형성하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자신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점은 왜 ‘대리게임’에 대해서 게이머들이 분노하는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줍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려서 최선을 다해 형성한 자기인상이 빛을 잃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인상 혹은 나쁘지 않은 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게임에 지고나서 늘 남탓을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인상관리전략입니다만 실제로 자신의 인상을 더 나쁘게 만들뿐입니다. 더 나아가 실력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남들을 탓하는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고착되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남탓을 하는 인격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남탓을 심하게 하는 팀원을 만난다면 화를 내기보다는 측은하게 여기는 대응전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보흐와 헤더톤(Vohs & Heatherton, 2004)의 연구에 의하면,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자존감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즉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나 평가절하를 더 심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우월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과 싸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신의 인상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차단’ 혹은 ‘강퇴’를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진흙탕 싸움을 하기 보다 그 시간동안 더 멋진 사람들과 만나서 더 멋진 나를 실험하는 것이 정신건강 뿐 아니라 게임실력을 높이는데도 백번 낫기 때문입니다.

 


이장주 소장 /

평범한 사람들이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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