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 게임 잡학 사전

2021-07-07


“Attentat 1942”는 체코의 찰스 게임즈(Charles games)에서 개발한 포인트 앤 클릭(point and click) 방식의 게임이다. “attentat"란 독일어로 “암살”을 의미하는데,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게임은 1942년에 벌어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 암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

 

하이드리히는 나치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 중 하나로, SS(Schutzstaffel; 친위대) 장관이었던 하이리히 힘러에게 발탁되어 정보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SS 보안방첩부를 맡게 된 하이드리히는 악마적 재능을 발휘하여 조직을 체계화하고,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1939년에는 게슈타포와 보안방첩부가 통합된 국가보안본부의 최초 수장이 된다. 이후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금의 체코 지방에 설치되었던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총독을 맡기에 이른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영국에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던 체코 레지스탕스는 영국 비밀 첩보국의 도움을 받아 하이드리히의 암살을 계획한다. 낙하산을 타고 체코로 잠입한 레지스탕스 요원들은 1942년 5월 27일 프라하 성으로 출근하던 하이드리히의 차량에 수류탄을 던진다. 등에 파편을 맞은 하이드리히는 병원으로 옮겨지지만 8일 뒤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레지스탕스 요원들은 성 키릴과 성 메토디오스 대성당(Saints Cyril and Methodius Cathedral)으로 피신하지만 배신자의 밀고로 소재가 밝혀지게 되고,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암살에 대한 나치의 보복은 잔혹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리디체(Lidice) 학살”이다. 친위대원들은 본보기로 프라하 근교의 리디체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을 골라 철저히 파괴한다. 건물을 모두 불태우는 것도 모자라 불타지 않은 잔해들은 폭파하고, 중장비로 땅을 다져 마을 전체를 평평하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리디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건물만 사라졌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주민들의 더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성인 남자들을 학살당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105명의 아이들 중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고작 17명뿐이었다고 한다.

 

학살이 일어난 후의 리디체

 

게임은 주인공이 할머니의 이삿짐을 싸다가 낡은 라디오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는 낡은 라디오를 보고는 하이드리히가 암살됐던 날 할아버지가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됐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왜 게슈타포에게 체포됐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할머니, 이웃 주민, 강제수용소 동료, 고등학교 친구 등 여러 생존자를 인터뷰하며 그날의 진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교육”이라는 목적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바람에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갖추지 못한 교육용 게임이 적지 않지만 “Attentat 1942"는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있는 연출로 게임 고유의 재미를 잘 살린 작품이다. 뛰어난 작품성 덕분에 “Games for Change"에서 "최고의 교육용 게임(Best Learning Game)"으로 선정되는 등 상도 많이 받았고, 유저들에게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여러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예를 들면, 강제수용소에서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도망친 여자 생존자는 전쟁이 끝난 뒤 독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목격하며 느꼈던 고통을 술회하고, 다른 생존자는 하이드리히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1,400명이 학살당한 사실을 언급하며, 하이드리히를 죽이는 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단순한 선악구도가 아니라 종합적 관점에서 역사를 평가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엔딩 크레디트를 보다가, 언젠가 우리나라 현대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좋은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할리우드식 전개에 소품과 인물만을 차용한 형식적 역사물이 아니라 고난의 시기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는 게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이병찬 변호사 /

실력은 엉망이지만 오랫동안 게임을 사랑해 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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