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TORY] 생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게임 - 게임으로 본 사회심리학

2021-07-13


“가만히 좀 있어!!”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혼낼 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떠들고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가끔 피곤해서 쉴 때 가만히 있는 것은 아주 달콤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오래가기는 어렵습니다. 이내 지루함이 몰려옵니다. 지루하다는 것은 할 것이 없다는 의미와 조금 다릅니다. 할 것이 많기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지루합니다. 하고 싶어 시작했더라도 변화가 없는 반복이 지속되면 지루합니다. 공부가 그렇고, 일도 딱 저렇지요. 이럴 때 보통 낙서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낙서가 없는 교과서는 찾아보기 힘들지요.

 

이렇듯 지루할 때 그림을 그리고 글을 끄적이는 낙서는 졸릴 때 하품을 하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발산하지 않고는 배기기 힘든 존재가 사람인 것입니다. 실러(Schiller)라는 사람은 이런 현상을 ‘예술본능’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예술은 배가 부른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낙서를 하는 것은 그냥 손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 상상이 흘러나와 생긴 결과입니다. 이런 상상은 얼마 안 가서 가상놀이가 됩니다. 이런 역할도 해보고, 저런 상황도 만들어 어 상상 속의 판타지를 연출하는 것이지요. 소꿉놀이, 병정놀이 같은 것이 가상놀이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스마트 시대가 되면서 놀이도 달라졌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소꿉놀이, 병정놀이를 게임으로 합니다. 마인크래프트가 대표적이지요. 사실 마인크래프트는 그래픽이 뛰어난 것도 사운드가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이 상상한 것들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높은 자유도가 가장 큰 매력 요소인 겁니다.

 


언 듯 보기에 아무 쓸데 없을 것 같은 가상놀이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이 최근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3살에서 8살까지 아이들에게 가상놀이는 가정법과 미래시제, 형용사의 사용이 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이라는 개념 역시 상상 놀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가상놀이는 아이들의 사고 유연성을 길러준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대체적인 결론입니다.

 

사고의 유연성은 창의성과 직결됩니다. 루트 번스타인(Root Bernstein)이라는 학자는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창의적인 사람과 비슷한 또래의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릴 적부터 가상적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놀이와 게임을 한 사람들이 훨씬 더 창의적인 인물이 많더라는 겁니다. 결국 놀이는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잘 노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인기가 많은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거기에 맞추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알기 때문이죠.

 

 루트 번스타인(Root Bernstein)


어릴 적에 놀지 않은 사람이 창의적인 인물이 되기 어려운 것처럼 앞으로 노벨상을 받는 뛰어난 인재들 중 게임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부모들을 비롯한 기성세대도 게임에 대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할 때가 된 듯합니다. 게임은 ‘좋다/안 좋다’는 구분을 넘어, 게임 시간은 몇 시간 이내로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제한을 넘어서야 합니다. 대신 게임 속에서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지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희로애락을 느끼는지 공감할 수 있는 부모의 말은 그냥 게임을 하는 아이의 뒤통수만 보는 부모보다 훨씬 존경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잘 노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장주 소장 /

평범한 사람들이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 <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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