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TORY] 나치의 광기가 남긴 아물지 않는 상처 - 게임 잡학사전

2021-08-23


나치는 인종으로 인간의 우열을 구별했다. 그들이 신봉했던 우생학에 따르면 유대인은 인종적으로 열등한 종족이었기에 제거되어야 마땅했다. 600만 유대인을 살해한 역사상 최악의 범죄 “홀로코스트”도 그래서 가능했다. 열등한 유전자는 제거의 대상이었지만, 반대로 우월한 아리아인 유전자는 보호하고 증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치에게는 자신들이 건설할 천년 왕국을 순수한 혈통의 아리아인으로 채우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아인을 늘리기 위해 히틀러는 자녀를 많이 출산한 여성에게 십자훈장을 수여 했고, 친위대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는 친위대원들에게 출산을 독려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충분한 아리아인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수많은 독일군이 전장에서 사망하면서 우수한 인종을 확보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한때 닭 사육사였던 힘러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을 확보하기 위해 1936년 “레벤스보른”을 설립했다. 고대 게르만어로 “생명의 샘”을 뜻하는 “레벤스보른(Lebensborn)”은 처음에는 인종적·유전적으로 우수한 아이의 출산을 돕기 위해 설치된 복지기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종적으로 우수한 독일인 사생아가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는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아리아인의 특성을 가진 점령지 아이들을 납치하여 “독일화” 시키는 역할까지 담당하게 된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인 잉그리트 폰 욀하펜도 이렇게 납치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저자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독일로 납치되었다가 레베스보른 시설을 거쳐 독일군 장교에게 입양된다.

 


 욀하펜은 11살에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60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독일 적십자의 전화를 받고 친부모를 찾기 시작한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순수한 피’, 즉 인종적 우월성에 대한 나치의 집착은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마치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하듯이 레베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하켄크로이츠 밑에서 명명식을 치렀다. 심지어 하이리히 힘러는 자신과 생일이 같은 아이들의 대부를 자처하며 은으로 만든 잔까지 선물했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로 인해 특히 많은 피해를 봤다. 금발, 파란 눈, 큰 키 같은 아리아인의 특성이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흔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 시설에서는 약 8천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독일이 패망한 뒤, 노르웨이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해방 직후 일본군 아이가 한국에 남겨진 상황을 상상해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독일군이 남긴 아이들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차별과 학대에 시달린다.

 

더 가슴 아픈 건 레벤스보른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레벤스보른 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상당수는 나치가 원했던 인종적 특성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이하 “마이 차일드”)은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로 남겨진 노르웨이 아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게임은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로 태어난 아이를 입양하면서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돈을 벌어가며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워야 한다. 한없이 밝고 착하던 아이는 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친구와 선생님의 괴롭힘 때문이다.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지지만 플레이어에게는 문제를 해결해 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슬픔과 무력감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마이 차일드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임이지만, 덕분에 플레이어는 레벤스보른의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레벤스보른의 희생자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는데, 레벤스보른의 책임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독일이 패망한 뒤 책임자 4명이 뉘른베르크 재판에 넘겨지지만 판사들은 레벤스보른이 ‘복지기관’이라는 전제하에 이들의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다. 잘못도 없이 오랜 기간 학대에 시달렸던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나치는 다시는 출현하기 어려운 사이코 집단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인종 차별에서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람들이 역사를 그다지 교훈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That men do not learn very much from the lessons of history is the most important of all the lessons of history).



이병찬 변호사 /


실력은 엉망이지만 오랫동안 게임을 사랑해 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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