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과 게임의 공통점 - 게임으로 본 사회심리학

2020-09-14


정글의 법칙이라는 TV 예능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리더 김병만의 이름을 딴 '병만족(族)'들이 전세계 오지에서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주요 내용입니다. 편리성과 안락함이 극대화된 4차산업혁명시대와 가장 동떨어진 생존 방식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2011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48기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 프로그램은 심지어 학습만화로까지 나왔다고 하네요. 



냉장고만 열면 편안하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요즘, 설령 냉장고가 비었더라도 배달어플 몇 번 조작만으로 치킨이며, 피자가 문 앞까지 배달되는 환경을 생각할 때 정글의 법칙은 아주 현실에서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재미의 원천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아주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좌충우돌하는 맴버들의 생존투쟁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재미를 주었던 겁니다. 


정글의 법칙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거울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이 극대화된 현대생활은 재미라는 감정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졌던 겁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게 되지요. 이럴 때 사람들은 삶의 활력을 느끼고자 재미꺼리를 찾게 됩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에 앗아간 재미 말입니다. 바로 정글의 법칙같은 편리함과 안락함이 제거된 재미, 살아 꿈틀거리는 날 것의 재미 말입니다.


문명 속의 불만 Sigmund Freud Gesammelte Werke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이란 책을 통해 인간의 쾌락적 본능을 희생하여 안정된 문명을 이루었다고 밝혔습니다. 대체로 문명적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것들과 반대에 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서도, 자고 싶은 대로 자서는 좋은 평가를 듣기 어렵습니다. 관심이 끌리는 대로 행동하면 어른스럽다(문명인스럽다)는 말을 듣지 못하지요. 그렇기에 문명이 발달할수록 무의식적 본능이 억압되어 불만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이런 불만이 지나치게 많이 쌓이게 되면 히스테리와 같은 신경증이 유발됩니다. 심하게 졸리거나 배가 고플 때 이유없이 짜증이 나는 그런 상태와 유사해집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재미가 고픈 상태이지요.


현대인들이 시달리는 정신적 고통들은 대부분 우리의 본능을 과도하게 억압한 결과라고 프로이트 학파는 주장합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문명적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원하고 바라던 바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기회, 즉 재미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문화가 고도로 발전할수록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산업이 함께 발달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꽃은 게임입니다. 게임 속 세상에서 신나게 치고, 부수고, 깨질수록 역설적으로 세상은 더욱 안전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실증 연구를 통해서도 발표된 바 있습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이 지금보다 더 강화될 4차산업혁명 속에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닥칠 위기는 지루함입니다. 그럴수록 게임의 진가는 더욱 빛나리라 생각됩니다. 


이장주 소장 /

평범한 사람들이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 : 청소년에게 게임을 허하라(공저), 사회심리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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